품질관리 적정성 검토 준비에만

A4용지로 1000장 넘게 제출

착공 신고~계약까지 수십가지

서류 넘쳐나 보관장소 빌릴 지경

 

과도한 중복, 업무 효율성 저해

현장마다 ‘페이퍼 워크’ 신음

日은 서류 간소화 시스템 운용

 

 

# 철도공사를 수행하고 있는 A건설사의 B공무팀장은 최근 한달째 서류와 씨름하고 있다. 발주처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품질관리 적정성 검토’ 준비 때문이다. 준비 서류는 A4용지로 1000장을 넘긴다. B팀장은 “이미 제출한 서류들을 체크리스트에 맞춰 점검하면 될 것을, 발주처에서는 관련서류들을 다시 한꺼번에 보기 좋게 만들라고 지시한다”면서 “하필 국감자료 준비까지 겹쳐 요즘은 그야말로 서류 더미에 파묻혀 사는 느낌”이라고 하소연했다.

건설현장이 공사와 관련해 쏟아지는 ‘페이퍼 워크’에 신음하고 있다. 착공부터 준공에 이르기까지 산더미 같은 관련서류 준비는 현장관리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다. 현장의 안전과 시설물의 품질을 높이려면 서류 부담을 간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0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상호)은 국내 건설공사에서 작성ㆍ제출해야 하는 공사 서류가 과도한 수준이며, 이로 인해 건설현장 관리자의 업무 효율이 매우 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산연에 따르면 착공 신고 시 필요한 서류만 해도 건축법, 주택법, 건설산업기본법, 국가계약법,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따라 다양하다. 여기에 관련 계약조건에서 규정하는 서류까지 합치면 수십가지에 이른다. 장수로 따지면 각 서류마다 100장은 쉬이 넘는다.

한 민간아파트 건설공사 현장소장은 “착공 시 착공계획서뿐 아니라 안전관리계획서, 품질관리계획서, 유해위험방지계획서 등을 관할 관청 및 기관에 제출해야 한다. 이것만 해도 수백 페이지 책으로 몇권은 족히 된다”고 토로했다.

입주일이 정해져 있는 건축공사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예산부족으로 공사기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토목공사는 더하다. B팀장은 “대부분의 토목공사는 장기계속공사로 진행이 되는데, 매차수별 계약 때마다 착공계획서ㆍ안전관리계획서ㆍ품질관리계획서ㆍ공동도급운영계약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면서 “법으로 정해져 있어 어쩔 수 없지만, 매년 중복된 일을 하다 보니 현장이 비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행정낭비적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착공계획서에는 현장배치 기술자들의 경력증명서가 첨부된다. 이를 매년 새롭게 첨부해 제출하는 식이다. 물론 중간에 기술자가 교체될 경우에는 변경원도 제출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공사 도중에는 계획서대로 공사가 수행되고 있는지 품질관리 적정성 검토 서류를 준비해야 하고, 하도급 관보고 서류도 만들어야 한다. B팀장은 “착공 때부터 현장에 근무했는데,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이 서류 준비에 쓰인 것 같다. 요즘같이 국감 기간에 걸리면 며칠 밤을 꼬박 새워야 한다”고 성토했다.

매번 비슷한 서류를 만들다 보니 보관장소도 모자랄 지경이다. B팀장은 “한번 제출할 때마다 바인더로 몇 권은 된다. 현장 내 문서고 2곳을 쓰고 있는데도 모자라 컨테이너를 하나 더 빌렸다”고 덧붙였다.

과도한 서류 요구는 비효율적 현장관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현장의 공무팀장은 “현장의 배치된 안전ㆍ품질 기술자가 3명씩이라면, 이 중 1명씩은 서류를 전담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현장에 투입돼야 할 인력들이 페이퍼 워크에 매몰된 셈이다.

이에 대해 건산연은 일본 사례를 들어 서류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건산연은 “일본은 2014년부터 전자 데이터 시스템을 활용하거나 공공기관에서 공사서류 간소화 정책을 시행해 업무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토교통성 관동지방정비국의 경우 총 91개에 이르는 공사 서류 간소화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 일례로 시공관리기술자 통지서는 시공계획서에 기재해 생략할 수 있고, 종합평가계획서ㆍ보고서는 입찰 시공 계획 또는 VE(밸류 엔지니어링) 제안을 할 때만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건설업연합회는 공사서류가 전자 데이터로 제출될 경우 43%의 서류 제출 부하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 전영준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현장의 과도한 서류작성으로 간접노무비가 불필요하게 지출되고 현장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우리도 일본의 사례처럼 기관별로 운영 중인 개별 전산 시스템의 정보 연계를 확대하고 전자 데이터의 생성ㆍ보관ㆍ폐기가 원스톱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회훈기자 hoony@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2019.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