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역 갈등의 불씨만 더 키웠다”

     
국토연구원 주최로 5일 서울시 강남구 포스코 P&S타워에서 열린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생산체계 개선방안 연구용역’ 공청회에서 건설관련 정부, 업계, 학계 관계자들이 안종욱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의 개선안 발표를 듣고 있다/   안윤수기자 ays77@ 

 



2022년까지 업역 단계적 폐지

‘소규모 구간 제외·토목 先시행’

종합업계 “형평성 어긋나” 반발

업종·등록기준 손질 먼저인데

‘거꾸로 혁신’ 부작용 우려도

 



“액션플랜 없는 ‘허황된 말 잔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행력을 갖춘 ‘솔로몬의 해법’도 아니다.”

5일 공개된 건설산업 업역ㆍ업종ㆍ등록기준 개선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총평이다.

국토연구원은 이날 오후 서울 역삼동 포스코P&S타워에서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생산체계 개선방안 공청회’를 열었다.

40여년 만에 추진되는 업역 전면 개편에 대한 건설업계의 관심을 반영하듯 공청회 시작 1시간 전부터 240석 행사장이 꽉 찼고 서서 듣는 참석자들이 더 많았다.

개선안 발표를 맡은 안종욱 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칸막이’와 ‘다단계’가 없는 건설 생산체계 개편을 목표로 업역, 업종, 등록기준 개선의 기본방향을 제시했다. 사전조율을 마친 사실상 국토교통부 안이다.

개선안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꼽히는 업역 해체를 위한 시간표를 담았다. 2020년 공공 토목분야를 시작으로 2021년 모든 공공공사, 2022년 민간 포함 모든 공사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다만, 종합-전문 간 등록기준 차이로 인한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 기술자ㆍ장비 등 상호시장 진출 시 갖춰야 할 입찰조건을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 또 주력업종(공사금액기준 50∼90%)을 보유한 전문업체의 원도급을 허용하고, 소규모 복합공사 구간인 4억원 미만에서는 종합업체의 하도급을 제한하는 보완장치를 선택지로 남겨뒀다.

이에 대해 종합업계는 ‘수용 불가’ 입장이다. 이재식 대한건설협회 실장은 “업역 갈등이 심한 소규모 구간을 제외하거나, 토목 공종을 먼저 시행하려는 것은 공종 간 갈등만 유발하고 형평성에도 어긋난다”며 “업역 개편은 예외 없이 전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업역 개편에 맞춰 의제 부대공사, 소규모 복합공사, 주계약자 공동도급처럼 업역 갈등을 야기해온 예외 제도도 손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공청회 참석자들이 안종욱 연구위원의 개선안 발표를 듣고 있다/   안윤수기자 ays77@ 



반면 전문업계에선 “(종합-전문 간) 체급이 달라 동급 경쟁은 말이 안 된다”며 소규모 공사구간의 전문영역 보장을 주장했다.

업종 개선안은 종합업종의 토목건축공사업을 폐지하고, 전문업종의 강구조물-철강재 설치공사업을 통합하는 것이 골자다. ‘만능 면허’로 불리며 다른 업종과 갈등을 빚어온 시설물유지관리업은 업무범위 축소와 겸업을 활성화하는 쪽으로 개편 방향을 잡았다. 중장기적으로는 경직적 업종주의 방식을 실적ㆍ역량 중심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업종에 따라 업역이 존재하는 순서를 무시한 ‘거꾸로 개편’이라고 지적한다. 손성연 씨앤씨종합건설 대표는 “업종 개편과 등록기준 조정을 먼저 시행한 후 그에 따라 업역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며 “업종개편은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등록기준 조정도 없이 업역 개편을 먼저 하려는 것은 혁신이 아니라 부작용만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등록기준 개선안은 자본금 기준을 2020년까지 지금의 절반으로 낮추는 대신 기술자 조건에서 경력요건을 대폭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실장은 “업역 개편의 전제조건은 동일한 등록기준하에 종합-전문 간 공정경쟁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편안은 업역 갈등의 뿌리인 등록기준 차이 해소방안을 비롯해 개편안보다 파급력이 큰 각종 보완 장치, 업종 체계 중장기 개편안, 등록기준 세부안 등을 확정하지 못한 미완성이라는 평가다.

특히, 종합업계가 개편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추진 여부가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다.

종합-전문 통합 또는 업역 폐지는 건설산업 선진화 전략(2004년), 선진화 방안(2009년) 등에서 핵심과제로 추진했지만 번번이 최적안 제시에 실패하면서 업계 반발로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나경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산업기본법 틀 안에서만 추진되는 종합-전문 간 업역ㆍ업종 개편안은 제로섬 게임으로 어느 누구도 수용하기 힘든 방안”이라며 “진짜 건설산업 생산성 혁신을 이루려면 건축설계와 시공 간 칸막이 해소 등 큰 그림을 그리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kth@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2018.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