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파악 통한 ‘정밀 타격’은 없고

광범위한 융단폭격식 법안 쏟아내

이천 화재 후 바닥재에 ‘황당 규제’

근본적 처방 없이 ‘처벌만능’ 지적



대형 산재 사고 때마다 반복되는 ‘규제 폭탄’, ‘땜질 처방’이 재현될 조짐이다. 사고 원인만 콕 집어 정밀 타격하는 ‘핀셋 규제’ 대신 광범위한 융단폭격식 규제가 쏟아질 때마다 기업들의 비명소리가 커진다.

8일 국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캡슐ㆍ땅콩형 스티로폼 경량체를 삽입한 건축물 바닥재(일명 중공슬래브)에 대한 내화구조 시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건축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4월29일 경기 이천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사고에 대한 후속 입법이다.

개정안은 중공슬래브 등 건축물의 주요 구조부에 사용되는 변형된 건축자재와 복합자재를 품질관리서 제출 대상에 포함시켰다. 한 의원은 “최근 층간소음 방지 등을 위해 콘크리트 슬래브 안에 스티로폼 경량체를 삽입한 건축자재가 널리 쓰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내화구조 시험이 의무화되지 않아 화재로부터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제안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내화구조 전문가들은 실효성 없는 ‘엉터리 규제’라고 지적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관계자는 “바닥재는 내화 문제가 아니라 층간소음 해결이 관건”이라며 “층간소음 기준을 통과한 바닥재를 대상으로 내화구조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실효성 없는 규제를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공슬래브 공법을 보유한 기술업체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방향 중공슬래브(TVS) 공법’이 2011년 건설신기술(628호)로 지정되면서 지난 10여년간 230여곳에 이 기술을 적용한 반석TVS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공슬래브에 대한 내화구조 시험을 새로 받으려면 상당한 시간과 인력, 비용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고 후 규제 폭탄은 곳곳에서 투하되고 있다. 정부는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중대 산업재해를 낸 기업 경영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특별법을 추진 중이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직원인 고(故) 김용균씨 사망사고 이후 노동계가 요구해 온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참고해 연내 특별법 제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재계에선 “처벌 위주의 징벌적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도 태안화전 사고를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며 원청의 안전책임을 대폭 강화한 내용이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산재 사고 때마다 무분별한 규제가 양산되면서 기업 옥죄기가 일상이 되고 있다”며 “적정 공사비, 공사기간 보장처럼 예산이 들어가는 해결책은 제쳐두고 처벌 강화와 같은 손쉬운 규제만 쏟아내는 것은 땜질 처방일 뿐,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태형기자 kth@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202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