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먹구구식 개발지 선정에 용역비만 날려 
 
주공 · 토공 PF사업 제동후 5개월째 대책없이 혼선 
 
　
# 대기업 계열 A사는 최근 서울시의 행태에 남모를 속앓이를 해야 했다. 서울시의 준공업지에 대규모 부지를 소유한 A사는 첨단 아파트형 공장 건설을 검토 중이었으며, 오는 8월 예정된 시의 준공업지 정비 계획에 따라 사업화에 나설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시는 지난 2월 용도변경을 통한 대규모 부지 개발 방침을 밝히며 A사에도 개발계획을 제출할 것을 요구해왔다. A사는 긴가민가하면서도 경제위기 조기 극복을 위한 투자 확대 유도라는 서울시의 취지에 공감해 부랴부랴 개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 4일 최종적으로 A사 부지는 협상 유보 판정을 받았다. 이유는 8월의 준공업지 정비계획에 따라 개발계획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는 것. A사는 서울시의 말만 믿고 개발계획을 수립하느라 용역비 수억원만 앉은 자리에서 날린 꼴이 됐다.서울시가 각종 개발사업을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하면서 민간기업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A사가 보유한 토지 이외에도 △도봉구 공장부지 △강서구 대상 부지 △강서구 CJ부지 △금천구 대한전선 공장 △ 구로구 CJ영등포공장 등 준공업지가 일제히 유보 판정을 받았다. 이들 부지를 보유한 기업들도 아무 성과 없이 인력, 시간 낭비와 함께 수억원에 달하는 용역비만 지출했다.
일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정책에 대한 고민 없이 인기를 의식한 서울시의 보여주기식 행정의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가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정비사업 프로세스 혁신안’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혁신안은 공공기관이 재개발·재건축 계획수립부터 사업완료 절차까지 적극 관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는 재개발의 고질적 병폐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민간자율을 확대하고 규제를 푸는 정부의 정책기조와는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지적한다. 택지부족으로 일감이 갈수록 줄어드는 산하 SH공사를 밀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4월 내놓은 고척동 돔구장 건설안을 시의회의 추가 예산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 원점에서 재검토키로 한 것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열기에 편승한 과시적 행정의 표본으로 꼽힌다.
정부의 개발관련 정책의 일관성 부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1월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공공기업 선진화 방안(5차)이 꼽힌다.
재정부는 당시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PF 사업에 대해 “수익성 있는 민간수행 분야 침해 및 비핵심분야 진출로 핵심역량을 훼손하고 있다”며 사업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향후 관리방향으로는 “판매시설·주상복합시설 등 상업성이 강한 시설에 대해 신규 사업을 제한한다”며 “단 대단위 택지개발지구 내 민간의 편의시설 공급 지연으로 불편이 예상되는 경우는 허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모형 PF사업에 조금이라도 관여한 사람들은 정부가 PF사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주공과 토공이 추진했거나 추진 예정인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대단위 택지지구의 중심상업지 프로젝트다.
정부의 기준대로라면 ‘상업성이 강하면서 민간의 불편을 막기 위한’ 시설인 셈이다.
1기 신도시 개발 당시 중심상업지 등 편의·지원시설 개발이 늦어진 데다 난개발이 이뤄져 주민들이 불편을 겪게 되자 택지개발촉진법에 근거 조항을 둬 탄생한 게 공모형 PF 사업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PF사업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 같은 관리 방향을 제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민간영역 확대라는 MB정권의 실적을 위해 급조된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어 시장이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주공과 토공은 정부의 방침이 막연한 데다 구체적 지침이 없어 추진 예정 사업들에서 손을 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발표 후 5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기준이나 방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기준 제정을 위한 부처간 협의조차 전무한 실정이다.
기획재정부는 큰 방향성을 제시한 만큼 주공·토공에 관한 사항은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가 나설 일이라는 입장이며, 국토부는 공기업 선진화는 기획재정부의 고유영역이라며 서로에게 짐을 떠넘기고 있다.
한 민간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에 대한 행정서비스를 강조하면서도 실제 행태는 수십년 전과 별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와 서울시의 졸속행정이 자칫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개발사업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div align=right> - 건설경제신문(09.06.16) -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