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공급 패러다임 지역 수요 맞춤형돼야
서울시민보다 강원도민의 인프라에 대한 ‘충족도’가 더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예로 ‘통근 소요시간’ 부문에서 서울시민의 충족도는 72.42%에 불과했지만, 강원도민의 충족도는 무려 98.19%에 달했다. 양적으로 서울시 교통 인프라가 강원도를 압도하지만 정작 주민 만족도는 역전된 것이다. 결국, 양이 아니라 지역 수요와 특성을 반영한 인프라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7일 강원도 알펜시아에서 열린 ‘2019 대한토목학회 컨벤션’ 특별프로그램 세션에서 서울대건설환경종합연구소는 ‘국가 인프라에 대한 서울·강원지역의 체감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G20 국가 중 국토면적당 고속도로 연장 1위, 철도연장 6위인 한국이 정작 OECD 38개국 대상으로 진행하는 ‘삶의 질’ 조사에서는 29위에 그치는 현상을 건설 인프라 측면에서 설명하는 국내 최초 조사다.
서울대건설환경종합연구소가 서울시와 강원도를 비교해 ‘인프라 충족도’를 조사한 결과 서울시민의 평균 충족도는 81.9%인 반면, 강원도민은 83.3%로 나타났다.
‘충족도’란 인프라의 수요자인 국민의 요구수준과 현재수준의 차이를 말한다. 예를 들어 강원주민의 현재 통근시간은 55분, 도민들이 요구하는 수준이 40분이라면 충족도는 72.7%로 나타난다. 반면 서울시민의 평균 통근시간이 40분, 요구 수준이 25분이라면 실제 통근시간은 강원보다 적게 걸리더라도 충족도는 62.5%로 강원보다 10%포인트 낮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실제 ‘통근·통학 소요시간’ 조사에서 서울의 충족도는 72.42%, 강원은 98.19%로 나타났다. 교통 인프라의 양적 측면에서 서울이 강원을 압도함에도 강원도민의 충족도가 오히려 서울보다 상당히 높은 셈이다.
‘지하철역 및 버스정류장 접근성’ 부문 조사에서도 강원 충족도(90.69%)가 서울(87.25%)보다 3.44%포인트나 높았다.
서울시민의 충족도가 강원도민보다 그나마 높은 부문은 ‘생활 인프라’였다. ‘초등학교 진입의 접근성’에서 서울시민은 86.89%, 강원도민은 80.19%로 조사됐다. 학교, 의료기관 접근성에 대한 충족도는 서울이 강원보다 근소하게 높은 셈이다.
이는 강원지역에서는 교통보다 초등학교 인프라 확대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복남 서울대 교수는 “기존의 ‘만족도’ 평가는 인프라 전반에 대한 주관적인 평가였지만 ‘충족도’ 평가는 지역 수용자의 눈높이를 보여주는 조사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며 “정부가 기존의 양적인 인프라 공급 패러다임을 수요자가 원하는 맞춤형 공급으로 전환해야 함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지표”라고 설명했다.
예로 서울대연구소가 실시한 강원 지역별 ‘인프라 충족도와 만족도 비교’에서 동해시의 교통 인프라 만족도는 3.09(5.0점 만점)인 반면, 충족도는 90.0%로 상당히 높게 나타났다. 동해시의 평균 만족도는 3.06, 충족도는 89.8%다. 이처럼 만족도는 대단히 낮은데 충족도가 높은 지역은 주민이 원하는 수준이 크게 높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에 소폭의 인프라 개선만으로도 체감 만족도가 상당히 올라갈 수 있다.
이번 서울대건설환경종합연구소의 조사는 인프라에 대한 정부와 산업의 인식 차이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지표란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현재 세계경제포럼(WEF)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인프라 점수(6.1점/10.0점 만점)는 1인당 소득수준이 8만달러에 육박하는 스위스(6.3점)와 비슷하다. 이에 정부는 2017년 이후 SOC 예산을 연평균 7.3%씩 줄여왔고, 인프라 예산을 지역관광시설과 태양광 에너지 설치 보급 등에 집중적으로 편성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30년 이상 노후 인프라가 많아 지속적인 인프라 투자가 필요함을 피력해왔다. 실제로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서울시 시설물 중 30년 이상 인프라 비중(올해 약 15%)은 2029년 36%로 급증한다. 노후 인프라가 늘어나면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과 인프라 충족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건설환경종합연구소 측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인프라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개별 인프라의 확충이 아닌 국가 차원의 인프라 마스터플랜을 세워야 하고 그 중심에 지역별 수요를 고려한 객관적 지표가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국민 인프라 국가지표를 개발해 지역 간 불균형 해소가 아닌 지역 특성이 반영된 자립적 발전이 되도록 지역별 수요를 반영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대는 11월 말 인구 50만명 이상 대도시 15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인프라 충족도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조사에서 국민 수요를 반영한 전반적인 대한민국 인프라 충족도 평가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최지희기자 jh606@
〈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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